
지난해 팔월에 명예퇴직했으니 어느덧 8개월이 넘었다. 진즉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막상 3년 이상을 남기고 나온다니 주변 반응이 갈렸다. “교장 일찍 시작하더니 결국 그렇게 되는구먼.” “어쩌니저쩌니해도 현직이 좋은데,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티지, 그랬어?” 대체로 이런 반응이었다. “평생 지킬 수 없는 언젠가는 물러나야 할 자리,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나온 것도 잘한 일이야.” 정작 당사자인 나와 가족은 후회하지 않고 담담했다.
“퇴직하면 무얼 할 건데?”
당시 만나는 사람마다 묻던 질문이었다. 누구는 당분간 원 없이 놀아보라고 진심을 담은 격려도 해주었다. 생각해 보니 맘 편히 놀아 본 기억이 없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놀아 볼 여유가 없었다. 마음이 가는 데로 퇴직 후를 준비했다. 글 쓴다고 허름한 공간 한 칸 장만했다. 책 뒤적거리고 글 끼적이기에는 과분하다.
며칠 후면 스승의 날이다. 미리 스승의 날 축하한다고 엊그제 제자가 골프 모임에 초대했다. 부임 첫해에 맺은 인연이다. 제자라고는 해도 40대 후반을 넘겼으니 큰형과 막내뻘밖에 되지 않는다. 새삼 세월이 흘렀음을 실감했다. 녀석들의 골프 솜씨가 수준급이었다. 따라다니는 나는 뒤땅을 치거나 이산 저 계곡으로 볼을 날렸다. 더이상 못 봐주겠던지 한마디 던졌다. “학생 때는 선생님께 배웠는데, 골프는 제가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맞는 말이다. 멋쩍게 웃었다.
운동을 마치고 식사 자리에서 학창 시절 추억이 안주로 올라왔다. 한 명은 수업 시간에 만화책 보다 걸려서 혼났던 기억을 소환했다. 다른 녀석은 입학해서 단어 시험 볼 때마다 나한테 엉덩이를 맞고 영어 과목을 포기했는데,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해준 격려 한마디에 공부에 흥미를 붙였다고 했다.
뜨끔했다. 누군가 툭 던진 한마디가 한 삶을 바꾸기도 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그동안 내 행동하나 말 한마디로 아파했을 주변인들에게 마음을 표현하고 더 다가가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 한다. 언제부터인지 의식적으로 상대에게 위안과 격려해줄 말을 건네고 있다. 바쁘다는 이유로 전화를 받는 데만 익숙했다. 그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쪼개고 베풀어야겠다. 작업실에서 지나온 길, 나아갈 길 등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이따금 외롭거나 불안해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운동과 글쓰기로 그 자리를 메우고 산다. 건강한 몸과 마음은 드나들 수 있는 문을 넓게 해준다.
짧지 않은 날을 잘난 척하고 가르치려고만 했다. 돌아서면 창피했지만, 앞에서는 뻐기기만 했다. 다 알면서도 그런 나에게 눈 덮고 입 막은 사람을 생각하면 귓불이 빨개진다. 이제 철이 드나 보다.
